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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해석 하자면 혁명의 거리

거리의 이름대로 살자면 참으로 뭔가 다른 사람들
예술가, 철학자, 사상가들이 살아갈 것 같은,
이 거리는 사실 혁명의 거리라는 이름과는 달리
안정적인 생활을 즐기고 소소한 변화에 만족하는 문제없는 듯한 사람들이
가면 하나쯤은 쓰고 살아갈듯한 거리입니다.


이처럼 전혀 혁명적이지 않은 이 거리는 어쩌면

한때 배우를 꿈꿨고 배우였지만 능력의 부족으로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어버린 특별하고 싶던 에이프릴에게, 아버지처럼 이름 없이 살지 않을 것이라며 다짐했던 특별해지고 싶었던 플랭크에게, , 완벽한 부부라는 가식의 가면을 스스로 쓰기를 강요했는지도 모릅니다.


현실에서 새로운 삶을 찾은 남자


이렇듯 가사일과 아이돌보기 평범한 이웃들과의 평범한 교류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삶을 원했던 에이프릴에게,
 그리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름 없는 일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던
플랭크에게도 옜날 사진속의 파리와 패기넘쳐 보이던 프랭크의 모습은
새로운 삶을 꿈꾸기에 완벽했을지 모릅니다.


 



새로운 곳에서 삶을 찾으려는 여자.


별다를 것 없던 삶속에 파리라는 혁명적인 요소가 끼어들자
 이 부부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현실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의 생각대로 돌아가 주지 않아버린 것이 문제 일 뿐입니다.


현실은 남편인 플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수채화 같은 파리가 아닌 사진 같은 기회와 새로운 도전거리를
에이프릴에게는 축복과 저주가 한꺼번에 주어져버렸으니까요.


떠날 이유가 사라져 버린 플랭크, 떠나야만 하는 에이프릴,

오직 미치광이만이 이해해 주는,
 이상황은 두사람을 최악의 갈등으로 이끌어 버립니다.


현실은 이상을 헛소리로 만들기도 한다.



 에이프릴만의 것이 되어버린 파리로의 새로운 삶.

혁명의 거리에 혁명을 꿈꾸는 사람은 한명뿐인
이 아이러니컬한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여자,
이제는 떠나지도 머무르지도 못하는 에이프릴를 보면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속의 작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왕과 우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자신의 삶을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에이프릴에게 아쉬움이 남더군요.

위대한 짤방 현시창이 생각나는 가슴 씁쓸하고 먹먹한 영화였습니다.



모두가 미쳐버린 세상속의 정상인

어느 쪽이 미친것이고 어느 쪽이 정상인가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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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혼종이
글쓰기가 무섭다.

무엇인가에 흥분에 글을 쓸려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거나 펜을 잡았을땐,

왜 흥분했는지 알수없고,

흥분은 가라앉히고 차분히 쓰려면,

무엇을 써야할지 잊어버리고,

넓게 보며 쓰려하면 시야는 좁아 지고,


사실 이런 문제보다 무서운건

무엇인가 없어 졌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없어진것 같다.

무엇이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비어있었을까?

뭔가 비어있는것 같다.

그래서 무섭다

애초에 비어있었는데

없던것을 찾고 싶어하는건 아닐까?

무섭다.
Posted by 영혼종이
알아서 뭐하게?


'저 그렇게 사람을 죽인 놈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당신의 그냥 그런 관음증이 돋을것 뿐이겠지.
 

재발방지?
실종을 단순 가출로 생각하지만 않았어도... 피해자가 늘진 않았겠지...


피해자 가족의 인권?
피해자 가족들의 인권이랑 죄자얼굴이 궁금한거랑 피해자들의 인권이 무슨 관계인데?




인권? 보호해야지...

물론 범죄자 강호순의 인권이 아니라...
강호순의 가족들의 인권을 지켜야지...
강호순이 살인범이지, 그들이 살인자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니가 얼굴을 알아서 뭐하게?
Posted by 영혼종이
  • 브로콜리너마저…. 유자차 듣다가… 울뻔했다.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2009-02-11 14:57:40
  • 쫌만 더하면 끝이다 쫌만더 일하면 끝이다.. 쫌만더…2009-02-11 15:58:00
  • 일…..끝났다 후훙 퇴근해야지 ㅋㅋㅋ(me2sms)2009-02-11 16:38:54
  • 투덜이 대장내시경 했다는데 똥꼬는 괜찮을까 ?ㅋㅋㅋ(me2sms)2009-02-11 16:40:12

이 글은 soulpaper님의 2009년 2월 1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Posted by 영혼종이
TAG me2sms

위향 테스트

분류없음 2009/02/06 09:18
일탈적 개인주의, 아방가르드 영역

난 신도 믿고, 과학도 믿고, 그리고 일요일 저녁 약속이 있을 거란 것도 믿어. 하지만, 내가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칙 따윈 믿지 못하겠군.” - 길 그리썸, CSI 라스베가스

 

이곳은 격식과 통념에서 벗어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탈적인 비주류를 위한 곳입니다. 고답적인 창작자,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의 예술과 문화의 성역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규율과 질서를 숭상하는 엄숙주의자, 국민 정서와 사회 정화를 믿는 검열주의자,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당장 사라져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화 예술 애호가. 문화 예술에 대한 평론가 수준의 심미안과 감별력을 소유했을 가능성도 있음.

  • (문화 예술 애호가가 아닐 경우) 경험과 교육에 의한 것이 아닌, 선천적인 감각을 가졌음.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을 알아보는 타고난 감각.
     
  •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감과 솔직함, 진실을 존중함.
     
  • 극단적 개인주의, 전위적 창의력을 장려함.


당신도 하고싶음?
Posted by 영혼종이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

가스실로 가는길의 마지막 음악.

이장혁의 담담한듯한 비참한 가사는

가슴이 문드러지게 슬펐다.

그리고 동시에 역겨움이 올라왔다.

지독한 역겨움이..



저기 내 어머니가 타고 있네
내 어린 동생이 타고 있네
화로 속의 쥐떼가 되어
한 줌 재가 되어가네
주여 어디에 어디 계시나이까
정녕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Posted by 영혼종이
  • 헐 테크니카 하다가 4000원 단박에 썼다……… 과소비다…. 문제는 또 하고싶다..2009-01-15 12:01:15

이 글은 soulpaper님의 2009년 1월 15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Posted by 영혼종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뒷골목 소년들은 용감했다..

새해 벽두부터

게임하려고...

광주에서 서울까지...

한양대 뒷골목의 소년들...

아니... 이제 청년들...

24살....

언제나 우리는 18살...







Posted by 영혼종이
이근안이 목사가 되었다..

앞뒤없이 바로 내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으 들었다.

신은 공평한가?

죄는 인간에게 행하고, 용서는 신에게 받는 것인가?

이 얼마나 관대한 신인가.

이런 씁슬한 생각을 하다가...

아주 자극적인 제목의 오마이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




빨갱이만 잡았을 뿐인데...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은 빨갱이만 잡았을 뿐이란다...
자신은 배신당했을 뿐이고, 편하게 옥살이 할 동안 자신의 가정이 무너져 있었단다.,
나 자신부터 용서해야 했단다..

이근안 그가 행항 참혹한 고문으로
죽은이가 얼마요, 병신된 이는 또 얼마요, 억울하게 옥살이한 이는 또 얼마인가.
또 그로인해 무너지다 못해 사라져버린 가정은 얼마인가.

그러고도 한다는 말이 나 자신부터 용서해야 한단다...
누가 용서하는 것인가?
가장 유명한 피해자인 김근태에게 용서받으면 이름모를 피해자들의 용서는 자연히 따라오는 것인가?
이 얼마나 지독한 자만심인가?

자기가 자기를 용서하고 신에게 용서 받으면 모든것은 용서되는 것인가?
이 얼마나 자가당착적인 용서의 함수관계인가.

이런식의 말도 안되는 논리의 용서를 받아주는 야훼는 참으로 관대할뿐이다.



기독교인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신은 공평한가?

당신들의 신이 가지고있는
저울은 평행을 이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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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혼종이
제 글을 읽기 전에.....
저의 글이 서태지 옹호글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597041 이 주소의
엠프님의 글을 읽어 주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서태지 어차피 그는 국내용이다.






원래 서태지의 팬이기도 하거니와 자극적인 제목에 혹해서
엠프님의 글을 유심히 읽어 보았다.


엠프님은 국내에서 흥행한 디워나 놈놈놈은
감독과 배우의 내임벨류와 돈을통한 마케팅에 의해서 흥행한 것일 뿐인 거품투성이의 영화이며.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감독의 내임벨류와 돈에의한 마케팅 보다는 영화자체의 작품성으로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우수한 영화이다, 라는 주장을 근거로
서태지가 자신의 음악에 네임벨류와 마케팅이 없었다면 과연 서태지가
네임벨류라는 계급장을 떼고 활동을 했다면 우리나라에서 이정도의 인기를 끌었을 것이냐?
라는 내용으로 글을 마치셨다.
(이것은 본인의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꼭 엠프님의 포스팅을 읽고 판단해 주십시오)


나는 엠프님의 글을읽으면서
엠프님께 2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하나 .서태지 혹은 놈놈놈의 주연배우들 (김기덕 감독을 포함해서)이
가지고 있는 네임벨류가 그냥 얻어진 것인가?



둘. 꼭 해외에서 인정을 받아야지만 훌륭한 것인가?

만약 나에게 위의 2가지의 질문이 던져진다면,
나는 단호이 세가지 질문 모두 아니요 라고 대답할것이다.

첫번제 질문
네임벨류 말그대로 이름의 가치다.
심형래,서태지,정우성,이병헌,송강호,김기덕,김지운
위의 7명의 배우,감독,가수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역사에  한획을 그었거나
혹은
적어도 한페이지에 이름을 당당히 올릴정도의 활동과 결과물을 남긴 사람들이다.
그들의 결과물을 봤을때 그들의 네임벨류가 그냥 얻어진 것이라고 말할수 없을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직업은 대중문화에 속한다
대중문화 또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
이익의 위해 가지고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
그것이 나쁜 것인가?


두번째 질문
내가 엠프님께 가장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바로 이 질문이다.
해외 혹은 세계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훌륭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세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훌륭한 것이다. 라는 말을 돌려 말하면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한것은 훌륭하지는 못하다, 라는 말이 된다.
국내용은 나쁜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있거나 흥행을 했거나 인정을 받았은 것들은
모두가 훌륭하지는 않지만 훌륭하지 않은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국내용... 국내용이라는 말은 적어도 한국에서 통한다는 말 아닌가?
한국에서 통하는 것이 그렇게 폄하받을만 한것인가?


나는 국내용을 국내용이라며 폄하하며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왜? 국내용이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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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혼종이